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란츠 리스트 (문단 편집) === 후배 음악가 === * [[요하네스 브람스]] 브람스는 슈만을 만나기 전에 레메니와 함께 리스트를 찾아갔는데, 이 때 리스트는 브람스의 <스케르초 E플랫 단조> 자필악보를 초견으로 완벽하게 연주해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소나타 B단조를 연주했는데 모두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가운데 브람스가 앉아서 졸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아무 말도 없이 응접실에서 나갔다고 한다. 이렇게 싸한 첫만남에도 불구하고 리스트는 몇주동안 브람스와 레메니를 손님으로 초대했다. 리스트는 진보적 낭만주의, 브람스는 보수적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음악가였다. 리스트의 지지자가 브람스를 비난하거나, 반대로 브람스의 지지자가 리스트를 비난하는 일, 브람스가 요아힘과 함께 리스트의 신독일악파에 반대하는 선언문을 게재한 일 등이 있었으나 둘은 인간적으로 대립했다기 보단 음악에 대한 사상으로 대립한 것에 가깝다. * [[에드바르 그리그]] 그리그는 리스트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곤 했는데, 리스트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에 대해서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스칸디나비아 혼이다"라고 극찬하며 소질이 있으니 앞으로도 쭉 이렇게 하라고 격려했는데, 이것이 그리그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 [[카미유 생상스]] 1861년에 처음 만난 후로 사적으로 함께 연탄 치는 것을 즐기거나 왕복서간을 보내며 교류했으며, 리스트가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피아노로 편곡한 것 처럼 생상스도 리스트의 몇몇 작품의 편곡을 남겼다. 또한 파리 생 마리 교회에서 생상스의 연주를 듣고 그에 대해 리스트는 "이 시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라고 격찬했다고 한다. 생상스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를 초연하기 위해 힘 쓰기도 했는데 정작 초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고 하며, 생상스의 가장 유명한 교향곡인 [[오르간 심포니]]는 리스트가 사망하기 2개월 전인 1886년 5월에 초연 됐는데 얼마 후 리스트가 세상을 떠나자 이 작품은 리스트에게 헌정됐다. * [[클로드 드뷔시]] 드뷔시가 로마대상에 수상하여 로마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1886년 1월에 리스트와 만났다. 이후에 [[부조니]]가 들은 얘기에 의하면 드뷔시는 리스트의 인상주의적인 작품 <에스테장의 분수>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드뷔시의 <물의 반영>이 이 <에스테장의 분수>에서 영향을 받아 작곡된 곡이다. 드뷔시와 같은 인상주의 작곡가인 [[모리스 라벨]]의 <[[물의 유희]]>도 <에스테장의 분수>의 영향을 받았다. * [[러시아 5인조]] 리스트는 러시아 5인조의 작품의 화성에 관심을 가져 차이코프스키보다 5인조 쪽을 높이 평가했다. [[무소륵스키]]의 가곡집 <아이들의 방>을 선호했으나 무소륵스키의 교류는 없었고, 5인조 중에서는 특히 [[알렉산드르 보로딘|보로딘]]과 친분이 있었다. 리스트는 독일의 음악제 관계자들에게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을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리스트가 존명 중일 때는 전 독일음악협회의 음악제에서 거의 매년 차이코프스키, 러시아 5인조, 루빈시테인 등 러시아 작곡가들의 음악이 연주됐으나 리스트 사망 후엔 차이코프스키 이외의 작곡가들의 연주빈도가 현저히 떨어진 것을 보면 독일에 러시아악파의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리스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단편적으로 알 수 있다. 보로딘은 "나의 <교향곡 1번>,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안타르> 같은 작품이 바덴바덴이나 마그데부르크의 음악제에서 연주될 뿐만 아니라 거기서 대성공하여 독일의 언론에 지극히 호의적으로 보도된 일은, 리스트의 신러시아악파에 대한 큰 관심과 공감, 그리고 독일의 음악계에서 가진 영향력 덕분이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 [[밀리 발라키레프]] 면식은 없었지만 서로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리스트는 발라키레프의 <[[이슬라메이]]>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발라키레프는 리스트의 교향시 <전주곡>을 러시아에서 초연했고, 무료음악학교에서도 <단테 교향곡>과 같은 리스트의 여러 작품을 연주해 러시아에 리스트의 음악을 알리는데 공헌했다. 그의 교향시 타마라는 리스트에게 헌정됐다. * [[세자르 큐이]] 편지를 통해 교류하고 있었으며 큐이의 피아노 조곡이 리스트에게 헌정됐다. *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을 리스트에게 헌정했다. 림스키코르사코프로부터 자신의 편곡이 포함된 러시아 민요집을 선물 받은 리스트는 이것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고 자신도 직접 러시아 민요 <이별>을 편곡했는데, 이 곡은 러시아 출신 제자인 실로티에게 헌정됐다. * [[알렉산드르 보로딘]] 보로딘이 바이마르에 있는 리스트를 찾아갔을 때 자신의 교향곡 1번에 대해 경험부족이라며 자조하자 이대로 괜찮으니 수정할 필요가 없다고 격려했다. 보로딘 교향곡 1번은 1880년 5월에 개최된 전독일음악협회의 음악제에서 연주돼 보로딘이 국제적 명성을 얻는 계기가 된다. 보로딘의 교향시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는 리스트에게 헌정됐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